규도자 개발 블로그
행복의 경계 본문
나는 이 블로그에서 항상 주장했듯이 인간도 그냥 무한히 펼쳐질 수 있는 복잡계에서 단순하게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라 칭하는 것들 또한 엄청 대단한 게 아니라 진화심리학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할 때 작용하는 호르몬이라고 생각 한다. 이게 글로만 보면 무슨 세상 다 깨달은 산속의 현자 같은 시니컬한 인상이지만 난 이러한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인생을 굉장히 단조롭고 열정적이게 살고 있다. 이번에 이어진 1주일도 넘는 연휴동안 게임 대여섯개를 돌려가며 치킨피자를 먹으며 도파민 파티를 했듯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요지는 이렇다. 나는 이 생각을 십수년 전부터 갖고 있었는데 오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어떤 내 나름의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의문은 이거다. 인간이 진화심리학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행위를 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데, 그 행복을 절대 선으로 여겼을 때 세상에서 절대 선의 최전방에 있는 건 조증에 걸린 환자가 아닐까..? 그러면 조증 환자 처럼 사는 것이 절대 선이고 이것을 추구해야 하나? 그러니까 곧, 정식적 물질적 안빈낙도를 지향점으로 사는 것이 맞는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이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은 옛날에 내렸었다. 하지만 그 기준이랄 게 딱히 없었고 그냥 실제 세계에서 이런 걸 추구하면 안되니까 아니다라는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운동을 하다가 이제 이게 왜 안되는지 어느정도 설명을 할 수 있게 됐다.
결론은 간단하게 사회적 비용이었다. 내가 조증에 걸려서 행복해도 주변은 코스트가 생긴다. 불행해진다는 의미이다. 조증에 걸려서 나는 정말 행복한데 내가 굶지 않고 의료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막대한 규모의 인프라가 필요하다. 의료 관련해서는 단순 병원 뿐만 아니라 전문의, 전산 시스템 등도 이에 포함되고, 복지와 관련해서는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자원봉사와 지원금이 필요하다. 이것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불행에서 나온다.
십수년간 머릿속에서 불편하게 남아있던 찌꺼기가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걸 깨달은 오늘 놀랍게도 또 스터디 주제에서 이런 게 나왔다.
출처: https://www.smbc-comics.com/?id=2569
(항상 많은 영감을 제공해주시는 John. 평생 이 글을 못보실 수도 있지만 몰래 이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행복의 총량을 측정할 수 있는 세상에서 컴퓨터가 공리주의적으로만 행동할 수 있게 된다면 세상 모든 인류가 느끼는 행복보다 펠릭스가 느끼는 행복이 더 크니(효율적이니) 다른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펠릭스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절대선(지향점)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이것에 대한 반론은 내가 위에 말했던 "사회적 비용"을 이제 오늘부터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길에 그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사회적 비용이 소모된다면 이는 지향하면 안 된다라는 것이 결론이다. 그러니까 도박이나 마약 등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 지언정 주변과 사회를 같이 파멸시키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결국 내 삶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십수년간 찾아다녔던 문제의 답을 어느정도 정리한 것 같아 말 그대로 "행복"했기 때문에 글을 남겨둔다. 운동이 이렇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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