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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트가 하기 싫어진 이유

규도자 (gyudoza) 2024. 3. 9. 09:32

우리 회사에는 매주 각자 흥미있는 칼럼이나 어떤 주제를 발굴해와서 발표 및 토론을 하는 시간이 있다. 그에 맞춰 비트코인 ETF승인으로부터 촉발된 코인 상승장에 새로이 암호화폐 거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분들도 많아지고 해서, 몇 주 전 토론 시간에 내가 예전에 했던 퀀트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이드로도 퀀트에 관심을 끊은지 약 1년 반 정도가 지났고, 발표를 하면서 확실히 느낀 게 있었다. 원래는 막연히 하기 싫다는 감정이었는데 발표를 준비하고 또 그에 대해서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오히려 훨씬 더 선명하게 퀀트에 대한 내 생각을 알게 되었다. 아래는 그 이유들이다.

 

 

1. 지식을 공유할 수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퀀트 전략이다. 퀀트에 필요한 수학적, 금융적 배경지식을 제외하면 알파를 창출하는 전략에 대해서는 공유할 수가 없다. 전략이 공유된 순간부터는 그저 속도와 호가 덜먹기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싸움이 장기화되고 또 전략의 노출이 지속되면 종국에서는 그 시장은 알파를 먹을 수 없는 플랫한 시장이 된다.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는 전부 여기에 있다. 근데 그 아이디어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없다. 오픈소스를 선호하고, 또 내 코드나 생각을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서 받는 피드백을 통해 발전하고자 하는 나에게 이것은 엄청난 갑갑함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분명히 이를 개선할 아이디어 또한 공유하고 생각을 주고받는 데서 발전하는데 그 발전 자체가 막혀있다.

 

2. PTSD

 예전에 실패로부터 배우다 시리즈에서도 썼지만 모의거래로는 절대로 제대로된 테스트가 되지 않는다. 실제 돈을 갖고, 내가 거래하면 실제로 플랫폼의 호가가 생기고 없어지는 그 과정에서 진행해봐야지만 실제로 이 전략이 잘 통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근데 그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 엄청난 돈을 잃게 된다. 아주 단순한 예로 부등호 하나만 반대로 써도 수십분 만에 전재산이 날라갈 수 있다(비싸게 사서 싸기팔기).

 그리고 시스템적으로도 항상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연결한 웹소켓이 정상적인 값을 들고 있는지, 가격갱신이 어떠한 오류로 인해 오래돼서 잘못된 가격을 가지고 시스템이 판단해 거래를 하는지 등등 수많은 요소들에 신경을 써야한다. 위 문단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적인 오류로 잘못판단된 가격이나 정보를 통해 거래가 이뤄졌을 때 파멸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대응했느냐. Slack봇과 갤럭시 워치를 달고 살았다. 파이썬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알럿을 주는 오픈소스인 Crybaby도 이과정에서 필요하게돼 만든 것이다. 워치는 알럿 발생에 의한 진동을 놓칠 염려가 없으므로 차고 다녔다. 종국에는 워치에 인터넷 앱까지 깔아서 워치에서 서비스나 시장상황을 판단하기 좋은 형태의 그라파나 대시보드까지 만들어서 상시로 조회하고 다녔다.

 이것만 있으면 다행이다. 비상시 직접 쉘에 접근하기 위해 핸드폰에 ssh앱은 필수였다. 선명한 기억이 하나 있는데 헬스장에서 공짜피티받다가 워치로 알럿이 와서 핸드폰으로 급하게 쉘로 접속해서 조치를 취했었다.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내 재산이 갈려버리는데...

 거기에 추가로 워치를 차고 잠에 들게 된다. 자면서도 돈벌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근데 또 이게 다가 아니다. 만약에 전략에 따른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따로 트레이딩까지 한다? 그럼 양질의 수면은 거의 포기해야 된다. 전업으로 할 때는 해선옵 트레이딩을 병행했었는데 새벽에는 미국 장을 보며 트레이딩을 하고, 조금 자고 일어나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미국주식시장 대응하고 그런 지옥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3. 시드와 가치관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긴 벌었지만 크게 만족스럽진 않았다. 절대적인 시드 자체가 작아서 수익률을 퍼센테이지로 늘려봤자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물론 2021년에는 직장에서 번 연봉보다 퀀트로 벌었던 금액이 더 크긴 하다. 하지만 그때는 장과 운이 따라줬던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이걸 한다고 해서 더 가치있어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곱씹고, 옛날에 했던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가르치려고 공부할 때 훨씬 깊고 진하게 공부가 된다는 말이 나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정말 나중에 시드가 커졌을 때 혹은 퀀트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때 다시 시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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