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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의 역전 (Inversion of Intention)

규도자 (gyudoza) 2022. 1. 29. 13:42

나는 원래 있는 개념을 조금 뒤틀어서 내식대로 만들고 이해하는 걸 좋아한다. 예전에 썼던 노력낭비, 골드형인간, 시간의 밀도 등등의 글들도 그런 글들의 일종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프로그래밍에 있는 제어의 역전(Inversion of Control)이라는 개념을 조금 뒤틀어서 의도의 역전이라는 것에 대해서 써볼 예정이다. 참고로 프로그래밍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생물과 도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고등학교 때 철학선생님에게 받았던 질문이다.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한번 잠깐이라도 이 둘을 구분하는 한마디 문장을 생각해보자.

 

 

 

 

 

 

 

 

당시 나는 무엇보다도 이 둘의 구분을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려 하니 모르겠더라. 그래서 물어보니 도구는 인간이 어떤 의도를 행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고 생물은 의도 없이 태어나거나 만들어진 것이라는 게 대답이었다. 이 한줄로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그렇다면 의도란 무엇일까. 의도란 사람이 본디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갖는 자세나 행위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이 이루기 위한 무엇"은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인간의 의도란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갖는 자세나 행위

 

 

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만든다라는 개념에 있어서 의도와 도구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내가 정한 의도의 역전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의도와 목적이라는 개념을 서로 역전시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기존의 의도와 목적의 관계를 "시험에 합격(목적)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의도)"라고 볼 수 있겠다. 근데 이걸 다르게 가져가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의도) 시험에 합격(목적)하겠지".

 

어찌보면 그냥 인생을 대충 살겠다라는 느낌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아니고 심지어 중단기적이고 정확히 설계된 어떤 일정에 목표를 맞춰야 하는 일에는 맞는 개념도 아니다. 그냥 삶의 전반적인 자세에 관해서 가져가야할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내 사정에 대입해보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프로그래밍하고 열심히 뭔가를 하겠다!"

가 아니라 그냥

"열심히 살다보면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인드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위같은 마인드를 가졌을 때보다 지금의 마인드(아래)를 가졌을 때 더 열심히 살게 됐다. 요즘엔 밥먹고 운동하는 시간 말곤 아침 8시부터 밤12시까지 거의 코딩만 하니 말이다. 내가 뭔가를 하겠다고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 아니다. 그냥 해보는 거다.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고. 잘되면 좋은 거고. 잘 안 되면 교훈으로 삼는 거고 이 블로그 실패로부터 배우다 카테고리에 글 하나가 더 올라가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그냥 한다"라는 삶의 의도로부터 나오는 부산물이지 어떠한 목적을 위한 행위의 산출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밀히 말하면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는 양자 중립상태에 놓이게 된다. 왜냐? 의도의 역전으로 인해 내 행위에는 목적보다 의도가 더 위에 있기 때문에 내가 계속 무엇인가를 하는 이상 나는 의도의 역전이라는 개념에 위배되고 있지 않다.

 

 

그냥 한다

 

 

그뿐이다.

 

 

 

 

이것이 의도의 역전이다. 그래서 이번에 2022년을 맞으면서 정한 내 인생의 키워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구태여"이다. 구태여 뭔가를 하기 위해서 시도하고, 구태여 뭔가에 도전하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목적성을 뚜렷하게 갖는 행위를 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 그러니까 어떠한 시도나 도전은 그냥 내가 갖는 삶의 자세에서 일어나는 하나하나의 이벤트들일 뿐인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요즘 꽂힌 브랜드가 있다.

 

그냥 쳐 하라는 얘기를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주구장창 하고 있던 나이키. 난 왜 이걸 30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몰랐을까. 이걸 깨닫고 나니 그동안에는 그냥 웃긴 짤로만 넘겼던 것들이 다르게 다가왔다.

 

 

그냥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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