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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

규도자 (gyudoza) 2021. 5. 23. 05:46

놀란 감독의 영화들을 참 좋아한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테넷은 거의 10번은 봤고, 인셉션도 한 여덟번은 본 것 같다. 왜 글을 놀란 감독의 영화들로 시작하냐면 인셉션 얘기를 하고 싶었고, 또 인셉션을 몇 번이나 봤지만 내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장면은 이것이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 그것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요즘 꼬비드가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실시간으로 조져놓고 있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계속해서 이 장면이 오버랩되기 때문에 도저히 글을 남겨놓지 않고서는 베기지 못하는 지경이 다다랐다. 그래서 써보려 한다.

 

 

인류 문명의 발전사에 대해서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인류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인간의 종특 중 하나가 한 개의 무리를 200명 까지밖에 인식을 못한다는 점인데(그 이상을 넘어가면 항상 파벌이 생기고 분열했다) 수렵, 채집이 주가 됐던 인류의 주 무리는 200명을 넘어가는 경우가 크게 없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 무리들이 강 하류에 정착하고 경작과 함께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무리는 수백 명이 넘어가게 된다. 그 무리의 지도자는 이들을 묶을 방법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종교"이다.

 종교는 생각의 힘으로써 인간을 무리에서 부족으로, 더 나아가 도시와 나라로까지 이어지게 만든 수단이다. 그리고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자 최고의 무기, 돈도 인간의 생각이 가치를 만들어낸다. 돈의 발전사를 보면 알겠지만 특정한 모양을 가진 조개껍데기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가치가 생기고 시장이 생기고 경제가 생긴다.

 1971년, 세계의 패권을 잡은 미국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달러의 금태환을 금지시키면서 이론상 지구자본의 무한증식이 가능해졌다. 애초에 "금은 가치가 있다"는 것도 인간의 생각이 만든 것이고, "금달러 교환이 안 되면 미국이 갖고 있는 금보다 달러를 훨씬 더 많이 찍으면서 달러의 가치를 지킬 수 있겠다"는 발상 또한 생각이다. 그리고 그 년도를 기점으로 해서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다.

1970년 1월 1일부터 오늘까지의 S&P500 지수
소비자 물가
S&P500 지수 대비 노동시간

위 그래프가 금태환 금지법 이후의 변화이다. 그냥 단순히 말하자면 이 사건은 "연준의 생각만으로 세계 자본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주입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USD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금은 미국 본토에 저장돼있다. 하지만 이미 그 가치를 아득히 뛰어넘는 달러가 풀렸다는 건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는 여전히 지구의 기축통화라는 위상을 지키고 있다. 왜냐? "달러는 안전하다"라는 인간의 생각 때문이다. 사실상 지구가 갖고 있는 절대적인 가치 그 자체는 오히려 우주로 쏘는 로켓들과 인공위성, 그리고 늘어만 가는 엔트로피 때문에 인류 역사 발생 이후로 계속해서 줄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태양에너지를 가치로 환산하면 얘기는 달라진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인간 개개인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가치는 상승하고 있다. 왜냐? 이 가치 자체가 "인간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구의 가치를 무한증식시킬 수 있는 미국의 힘 앞에, 그 어떤 누구도 세계 경제 지수가 1970년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하지 못한다. 왜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가치를 주입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현상"이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마다 꼭 경제학자들이 예로 드는 은행의 비유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규도자 은행이 있고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 규도자 은행은 천 원을 갖고 있다. A라는 사람이 빵사먹으려고 900원을 빌려갔다. 1년 후에 1000원으로 준댄다. 그럼 규도자 은행은 100원만 갖고 있고 A에 대한 1,000원의 채권(간단하게 하기 위해 이자와 원금을 합쳤다)이 있다. A가 빵을 먹는 걸 보니 B도 배가 고파졌다. 자기도 빵 먹는다고 900원만 빌려달랜다. 규도자 은행은 현금 900원이 없다. 아! 마침 A에 대한 채권 1,000원이 있다. A는 신뢰가 있는 사람이라 돈을 꼭 갚을 것이니 이것을 쪼개서 B에게 빌려주고 규도자 은행은 100원의 이자를 더 받으면 개이득이겠구나 해서 현금이 아니라 채권을 준다. 그리고 B는 이것을 갖고 빵집에 가서 빵을 사먹는다. 빵집도 A의 평판은 잘 알고 있으니 돈을 갚을 게 뻔하기 때문이 흔쾌히 빵을 내준다. 여기서 빵의 생산단가는 300원이라고 쳐보자.

 

자 한번 정리해보자. 규도자 은행이 갖고 있던 천원은 이렇게 변했다.

규도자 은행: 100원의 현금. A에 대한 채권 100원, B에 대한 채권 1,000원. (1,200원)

A: 규도자은행에 빌린 900원으로 산 빵. (900원)

B: 마찬가지로 규도자은행에서 빌린 900원(규도자 은행이 갖고 있는 채권)으로 산 빵. (900원)

C: A와 B가 가져온 현금 900원과 채권 900원. 그리고 빵 두개의 생산단가 -600원 (1,200원)

TOTAL: 4200원.

 

A가 규도자 은행에 빌린 900원을 갚겠다는 "사회적 생각"이 천원이라는 현금의 가치를 420%로 만든다. 이것을 크게 해석하면 경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양적완화"라는 말을 꺼낼 때 단순히 숫자로 노출하는 그 규모에 놀랄 게 아니라 시장에 풀리는 그 달러가 위처럼 오고가는 과정속에서 사람들의 약속과 생각이 어떤 상호작용을 거치고, 또 그 가치가 어떻게 확대되고 시장에 희석되는지 알아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다면 은행의 "지급준비제도"에 대해서도 공부해보는 걸 추천한다.)

 

 

 

 

여기까지 인간의 생각이 인류를 어떻게 발전시켜왔는지 알아보았다. 그럼 이 "생각"이라는 것이 또 지금 이 세계를 어떻게 휘몰아치고있는지 알아볼 차례이다.

 

지금 세계의 패권전쟁 하면 떠오르는 두 나라가 있다. 꼬비드의 발원지인 중국과 지구 경제를 되돌릴 수 없는 챗바퀴에 넣어버린 미국. 이 경쟁의 뿌리는 무엇이냐.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이다. 사실상 중국도 표면적으로는 자유경제시장체제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공산주의라고 표현하긴 모호하지만 공산주의 특유의 그 파시즘적인 측면을 표현하는 것이라 이해하면 편할 것이다.

 그렇다. 세계의 패권 대립 또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많은 종교적 갈등과 전쟁도 "내가 옳다"라는 생각에 의해 발생하듯이 세계는 아직도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카오스에 휩싸여 있다. 학자라고도 할 수 있는 오래된 그 개인의 확고한 사상이나 신념, 이념이 아직도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의 싸움에 대해서 말이 나온 만큼, 미러 냉전시대때 중합수 사태라는 걸 같이 얘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건 니콜라이 페디아킨이라는 무명의 러시아 과학자의 실험이 사회적 패닉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과학자는 실험 도중 물이 특정 조건에서 갑작스럽게 안정된다는 걸 발견했는데 이 물은 쉽게 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증발하지도 않을 뿐더러 밀도와 점도가 더 컸다. 단순히 여기에서 끝났으면 다행이겠지만 그랬으면 사건으로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물을 '중합수'라고 명명했는데 단순히 "러시아 과학자가 발견한 새로운 형태의 물"이라는 단편적인 정보만 있을 뿐인데 냉전시대라는 공포를 겪어온 그 세대와 언론들은 이것을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 연구결과를 부풀려 소량이라도 바다에 던지면 모든 물을 거대한 덩어리로 변화시켜 마시지도 못하고 증발도 되지 않고, 얼지도 않아 모든 자연현상이 뒤틀려 세상을 망하게 하는 파괴적인 무기로 변모시켰다. 그렇게 사회에는 패닉이 왔지만 더 진행된 연구 결과 "불순물이 들어간 물"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연구 중에 물에 땀이나 석회질 등이 들어가서 보통의 물과 다른 형태의 물이 된 것이다.

냉전이라는 학습된 공포가 사람들 스스로를 몰아 넣은 일련의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이 계속해서 세계에 작게나마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김치나 한복 등 몇 몇개 한국의 문화나 역사를 동북공정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도, 주변국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듯한 선언을 계속 하면서도 자유시장에 계속 진출하는 것도 결국엔 이렇게 하다보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세대는 이 과도기를 직접 몸으로 겪고 있기 때문에 반발심이 있지만 그것은 정도의 문제라고 본다. 역사왜곡으로 문제된 조선구마사나 중국제품 PPL로 논란이 된 빈센조나 전부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지금 일종의 영점조절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조선구마사같이 식문화와 역사왜곡, 그리고 빈센조와 같이 직접적인 중국제품 PPL은 너무 작위적이라서 소비자들의 반발을 일으키니 좀 더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지금 현 세대는 TV에서 중국어만 나와도 좀 어색하고 듣기 싫고 하겠지만 불과 수십년 전에는 중국 연예인들이 한국 최고 인기였던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중국 상품과 중국어를 듣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왜냐? 중국은 우리나라를 자신의 속국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그것을 뭍밑에서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개인의 생각으로 움직이지만 나라와 단체의 생각은 좀 더 큰 스케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생각으로 인해 팽창된 지구의 자본시장이 중국의 성장으로 인해 흡수되면서 그 자본이 지구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미국과 패권전쟁을 할 정도가 됐고 말이다. 아직 100년도 안 된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체제라는 이념대립이 아직까지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아 남자들은 더 멀리갈 것도 없다, 인생 가장 꽃같은 시절 2년을 국방의 의무라는 변명으로 희생당하니까 말이다. 이 모든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온 세상을 망칠 거야"라는 생각과 "자유민주주의가 온 세상을 망칠 거야"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찌 보면 인류사 가장 길고 거대한 종교적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나라라는 집단의 생각에 굉장히 쉽게 좌지우지되고 휘둘리고 있다.

 

 

 

 

이것을 개인의 스케일로까지 가져와보자. 생각이라는 바이러스를 제일 주의해야할 곳은 바로 인터넷이다. 내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사람은 글을 배우고 나서부터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데 사람은 글로서 사고하듯이 어떤 글을 읽다보면 그 글이 어느새 자신의 생각인 것마냥 자리잡게 된다. 형편없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들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커뮤니티에 형성된 여론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마냥 머릿속에 심어지게 된다. 머릿속에 심어진 그 생각의 씨앗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취사선택하여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이었던 것마냥 자신에게 한 점 부끄럼 없는 단단한 이념과 사상이 된다. 그리고 그 이념과 사상은 자정작용이 되지 않는 커뮤니티와 만났을 때 돌이킬 수 없는 무한 피드백현상을 낳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급진론자들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특히나 주의할 점은 자신이 보는 글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내 주위만 해도 분명히 고양이를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날 길고양이들이 혐오스럽다느니 다 잡아 쳐 죽여야한다느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친구가 하던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니 혹시 거기 분위기가 그렇지 않냐고 물어보니까 표정이 ?_?이렇게 되더니 진짜 그런가보네 하고 친구가 커뮤니티를 좀 경계하게 된 경우가 있다.

 

 

 

특히 요즘은 혐오의 시대라고도 표현할 수가 있는데 인류 역사상 서로 반대진영에 대한 혐오감이 제일 심한 세대라고 한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정치적으로 분단하자면 예날에는 좌파와 우파 모두 그래도 말은 들어볼 상대라는 게 서로에 대한 평가였다면 요즘엔 서로 죽이고 싶다고 평가하고,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남녀갈등도 이에 속한다. 이는 위에 말했던 "자정작용이 되지 않는 커뮤니티의 무한 피드백 현상"이 시스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뭔말이냐? 바로 우리 프로그래머들이 만들고 있는 추천시스템이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더 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게 설계돼있다. 인류가 빠르게 발전한 만큼 새로운 열매와 새로운 땅은 항상 모험이었고 위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한 '익숙함'에 끌리는 것은 생물학적인 본성이다. 하지만 이 생물학적 본성을 알고리즘으로 이용한다. 그것이 바로 추천시스템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수많은 플랫폼들이 발전하는데 이들의 수익원은 광고이다. 광고 단가 측정은 어떻게 하느냐, 노출도와 유입률, 실수요자 전환율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뭐 이런 복잡한 과정을 제하더라도 가장 간단한 경제학의 함수가 있다. 바로 "규모의 논리"이다. 중국이 세를 키울 때 인구가 도움이 된 것처럼 흔히들 인구를 "경제의 함수"라고 하는데 이를 플랫폼으로 옮기면 바로 유저의 숫자와 유저가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된다. 위 플랫폼들은 이미 유저수 확보라는 단계는 넘었으니 다음단계가 필요하다. 바로 사용시간이다. 유저의 플랫폼 사용시간을 길게하려면? -> 해당 플랫폼에서 많은 미디어를 접하게 한다가 된다. 사용자가 플랫폼에서 많은 미디어를 접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이쯤 됐으면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비슷한 컨텐츠를 계속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계속해서 추천영상을 보면서 알고 보니까 몇 시간이 지났다는 주변의 경험담이나 자신의 경험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뭐 귀여운 고양이 영상이나 강아지 영상, 웃긴 동영상이나 과학 인문학 사회학 그런 강의면 상관이 없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경계해야할 것은 정치컨텐츠 같이 특정 이념과 관념이 담긴 컨텐츠에 계속 노출되는 것이다. 자극은 점점 더 강해져야 사람들의 중독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추천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미디어 또한 일반 사람들에게 노출도가 높은 약한 자극에서 점점 일반 사람들에게 노출도가 낮은 강한 자극으로 옮겨간다. 알고리즘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난 기술의 가치중립성을 옹호한다. 잘못한 건 무분별하게 그런 컨텐츠를 확대 재생산하고 자정작용이 이뤄지지 않는 곳에서 무한 피드백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추천알고리즘이 좌파는 점점 좌파끼리, 우파는 점점 우파끼리 뭉치게 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속도가 나날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지구 평평이들이 역대 최고 숫자를 기록한 이유도 이와 같다. 혹자는 이들의 머리가 텅텅 비었으니까 텅텅이라고 불러야 한다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들을 꽉꽉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의 두뇌에는 이미 평평론자들의 해석과 이념이 가득 차있어서 다른 것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꽉 막힌 이념론자. 요즘 인터넷에서 아주 보기 쉬운 사람 아닌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휩쓸려버린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생각이라는 요소가 인류를 어떻게 발전시켜왔고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빅스케일의 생각이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또 개인은 이 생각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는지 알아봤다. 요즘 버스를 타도 TV가 달려 있고, 식당에 가도 TV가 있고, 메신저를 켜도 뉴스가 있고 포털을 열어도 뉴스가 있으니 쉽게 피로해진다. 특히나 가면 갈수록 다루는 컨텐츠가 분노와 혐오를 조장하고 특정 현상이나 사건에 있어서 분노하지 않으면 그사람을 비정상인, 싸이코패스, 소시오패스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분위기에 탈진했다고 해야하나. 완고한 자기 자신이 머릿속에 정립돼있지 않으면 이런 반복적인 노출이 결국엔 당신의 생각에 씨앗을 심고 상황과 경험, 생각을 취사선택하여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이었던 것마냥 위장하여 자라나게 될 것이다. 미디어에 의한 노출은 자연인이 되지 않는 이상 피할 수 없다. 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유연하게 잘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모두 정보에 홍수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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