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도자 블로그
무너지는 조직에 대한 단상 본문
연말에는 으레 좋은 이야기를 쓰기 마련이다. 새해에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굳이 이런 기운 빠지는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 나름대로의 의식이다. 나쁜 기운은 전부 2025년이라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해에 태워 보내려 한다.
전에 있던 곳을 떠난 지 100일이 넘어 반 년이 가까워진다. 그런데 아직도 내부의 소식과 탄식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리드급 인재들, 그나마 열정이 남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팀을 떠나고 이직한다는 소식을 시시때때로, 실시간으로 전해 듣는다. 그래서 이런 마음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시작을 끊은 건 나다. 다만 나는 조금 더 빨리 움직였을 뿐이다. 그 미묘한 분위기, 어떤 냄새 같은 것을 느낀 건 훨씬 전의 일이다. 떠난 사람들과 떠날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가고 싶은 회사가 적어질수록 마음에 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그리고 어디선가 읽은 글이 있다. "이 회사에 나와 비슷한 급의 인재를 얼마나 데려오고 싶은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글을 읽은 뒤로 회사 만족도를 가늠하는 내 공식에 새로운 척도가 하나 생겼다.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얼마나 이 조직에 끌어들이고 싶은가?" 전에 속해 있던 조직은 첫 번째 그래프, 그러니까 가고 싶어진 회사의 숫자는 정말 적었다. 그만큼 만족스러웠고 그렇게 내 인생에서 꽤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하지만 두 번째 그래프,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은가에 대한 수치는 거의 0에 수렴했다. 거기에 일하고 있을 때도 이부분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사장님과 팀장님에게 얘기했다. 애초에 데려올 생각도 없고, 심지어는 누군가를 데려오면 그 사람에게 죄송할 수준이라고.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인재였다. IT 회사라는 게 결국 사람이 주가 되어 굴러가는 곳인데, 단순히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업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마주쳐본 수준의 사람들이 있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인가 싶어 죄책감 비슷한 걸 느낀 사람이 있다면 안심해도 좋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그 축에도 끼지 못한다.
여기서 복합적인 문제가 파생된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를 용인하는 조직에 대한 회의감. 이 사람에게 일을 주면 어차피 처리가 안 되니까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 업무가 몰리는 현상. 여기에 친목과 정치까지 엮이면 내가 한때 사랑했던 회사에 대한 실망은 사랑했던 만큼의 곱절로 강해진다.
나는 내 일이 좋다.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열심히 안 하려고 해도 그냥 열심히 하게 된다. 내가 개발을 열심히 안 한다? 이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열심히 하면 스스로 병신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나도 슬슬 그냥 놔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까 그냥 내가 거기에 있으면, 나는 나대로 존재하면 병신이 되는 느낌이었다. 좀 격한 표현이 아닐까 싶지만 오히려 이건 글로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순화된 정도이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듣기 싫어지고, 하루 반나절이면 끝날 일을 입만 털어서 이 주, 삼 주 걸려 처리하고 싶어졌다. "고이고"싶어졌다. 그래도 끝끝내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이직을 했다. 이 업을 놓고 싶지 않으니까. 그대로 있었으면 몇 년 동안 손해 본 게 아까워서라도 스스로 드러눕고 싶어졌을 것이고 그렇게 나는 도태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절대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이 도태됐다는 얘기는 아니고, 내 정신이 도태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애초에 내가 열심히 한 걸 손해 봤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나도 드러눕고 싶어졌었다고 표현하게 되는 것 자체가 건강하지 않다.
무너지는 조직을 안에서 경험한 바로는, 식량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난파선의 느낌이었다. 식량은 고갈되어 가고 이를 분배해야 하는데, 나와 내게 친한 사람에게 돌리려면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야 한다. 무너지는 조직에서 그 대상은 힘이 가장 약한 사람들이 되더라. 배가 난파하고 표류하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된 책임은 절대 "책임자"가 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임자들은 발언권이 가장 센 경우가 많아 그것을 자신과 자신의 사람들을 보신하는 용도로 휘두른다.
내가 사랑한다 표현해 마지않던 조직이 찢어지고 갈라지는 걸 옆에서 보며, 그래도 일에 대한 자세가 진지하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의 이직을 도와주는 건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반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조직이 무너지고 있다는 통곡에 가까운 탄식을 듣고 있으면, 그래도 나는 잘 버티고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내가 이걸 촉발시킨 건가 하는 죄책감이 든다.
떠나면서 말했다. 내가 떠나면 분명히 가장 약한 고리가 드러날 거라고. 마지막 출근일 며칠 전까지 상용 서비스에 장애를 일으켜서 내가 수습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에 진지한 사람들은 떠나고, 그 약한 고리는 회사에 남아 고인물로 남게 되는 이 상황. 참 슬픈 건, 이 현상 자체가 내가 갖고 있던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존경심과 사람들에 대한 좋은 마음까지 의심의 싹을 만들고, 병들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 와해되고 있는 조직은 아직까지도 내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하지만 그 개같은 경험들 때문에 지금 이 회사에 올 수 있었고, 여기에서의 귀한 경험들을 쌓을 수 있었다. 내가 거기에서 20년동안 일해도 정부에 AI관련 자문을 가거나 Anthropic과 컨퍼런스콜로 내가 만든 것에 대한 설명을 하는 그런 일들은 절대 없었다. 오히려 상상을 해봤을 때 부정적인 모습만 그려진다.
그래서 양가감정이 든다. 조직을 떠날 계기를 제공해줘서 내가 훨씬 더 나로 있을 수 있는 곳,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곳에 도착했으니까. 진심으로 그곳에서 6시간 일하는 게 여기서 12시간 일하는 것보다 곱절로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반면교사도 교사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 것이다.
굳이 왜 내가 속해 있던 조직을 씹어서 내 얼굴에 먹칠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정말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조직이 망가지는 게 슬프고 아쉬워서 그렇다.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참 좆같은 인생이다.
아무튼 이것으로 말미암아 2025년의 독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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