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도자 블로그
2025년을 어느정도 떠나보내면서 본문
2025년에는 무려 글을 이것 포함 6개밖에 적지 않았다. 예전에 썼던 말마따나 소위 "배부른 인간"이 돼서 그닥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진 탓일 수도 있겠다.


러시아의 암흑기에 우수한 문학가들이 대거 배출됐듯이 난 우수한 인간은 아니지만 내 인생 최고의 암흑기 때 썼던 글들의 폼을 아직도 못따라가는 것 보면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요즘 살아가는 느낌을 또 기록해보려 한다.
문들이 닫히는 느낌
여기에서 표현하는 문은 일종의 가능성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대통령이 될 수도, 노벨 상을 탈 수 있는 가능성도, 어쩌면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세상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는 상태이다. 그것이 이제 세상에 나오면서 만나게 되는 부모님, 집안의 재산, 심지어는 국가, 환경, 성장과정 중에 관계를 맺는 사람이나 친구 등 수많은 요소와 관계 의해서 닫힌다.
나는 위에서 갓난아이는 정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문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며 이 숫자가 무조건적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상상하곤 한다. 내가 이것을 처음 느꼈던 것은 직업군인으로 살아가던 때였는데, 공군사관학교 사관생도를 모집하는 공고에서 어느새 나의 년생은 모집기준을 충족하고 있지 못했던 때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 순간부터 그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공군 사관생도가 되는 문이라는 것이 닫힌 것이다. 심지어는 그때도 이십대 초반이었는데 말이다. 애초에 갈 생각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지만 일단 범법, 편법이나 제도의 변화 등 사회의 변혁이 필요한 커다란 움직임을 제하고는 절대 열 수 없는 문이 하나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싱숭생숭 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인식한 첫 번째 닫힌 문이다. 그 가기 어렵다는 서울대도 공부할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그냥 아예 뒤졌다가 무한의 가능성을 뚫고 다시 대한민국에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생긴 것이다.
근데 지금은 이 문들이 닫히는 개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수그래프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도 당연한 게 생물이 도달할 수 있는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착하면 갓 태어났을 때 열려있던 모든 문들이 닫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맞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닫히는 속도라는 것이 속도가 제대로 붙었다는 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예를 들어서 난 이제 피지컬 100이나 피지컬 아시아 같은 프로그램에는 나갈 수가 없다. 난 프로게이머가 될 수 없다. 둘 다 내가 동경하는 직업이지만 그들이 경쟁하고 쟁취하는 순간을 미디어를 통해 그 감정의 편린만을 왜곡된 형태로 나만의 해석으로밖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됐다. 이것들이 내가 느끼는, 급속도로 닫히는 문들이 있다에 대한 감상이다.
이제야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서 확실히...? 는 아니고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프로그래밍 분야에 있어서는 나는 확실히 구현에 강하다.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어야하지?라고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답이 엄청나게 빠르게 나온다. 빠른 건 과장보태서 약 1년도 더 앞서는 것 같다. 특히 text to sql같은 경우에는 업계에서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하고 고민하고, 동료가 회사 파일럿 프로젝트에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만에 실제로 동작하는 형태로 만들어냈다. 전 회사의 현업 개발자이신 대표님에게도 받은 칭찬 중 하나가, "실제로 프로덕션 레벨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0에서부터 쌓았으면서 이렇게 잘 작동하게, 딴딴하게, 빠르게 만드는 사람은 흔치 않다. 데이먼은 그게 되는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뉘앙스였다. 나는 이게 당연히 모두가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남들한테는 없는 나만의 강점 중 하나였다. 이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생겼다. AI한테 한번 대필을 시도해봤다. 쓰고 싶은 글감은 쌓여만가는데 현업과 각종 우선순위의 타협으로 인해서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한번 내가 여태 쓴 글들을 기반으로 해서 내가 원하는 주제에 대해 글을 한번 내 흉내를 써보라 했는데 진짜 형편없었다.
이 글쓰기라는 행위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블로그나 미니홈피, 버디버디에서부터 시작했던 일이다. 그러니까 정말 그 사람이 뭔가 살아가는 만큼이나 당연한 행위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냥 평균보다는 잘하게 된다는 느낌이다. 나도 내가 막 엄청 잘쓴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못쓴다고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실제로 이 블로그에도 그렇고 잘 읽었다는 댓글을 꽤 받으니까 말이다. 물론 내가 아마추어 레벨인 것을 감안하여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글이 세상에 약간이나마 좋은 영향을 줬다는 자부심은 있다.
이 글쓰기라는 행위가 프로그래밍과 만나면 특별한 시너지가 생긴다. 난 프로그래밍도 결국엔 글쓰기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나와 더불어 누군가가 나의 논리적 흐름을 언제라도 까볼 수 있게 글을 쓰는 행위가 이 개발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능력들은 아무래도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는 걸 좋아했던 데다가 컴퓨터도 혼자 분해하고 조립하고 리눅스도 쓰고 했었던 것처럼 컴퓨터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컸던 것이 꾸준히 시너지를 일으켜서 지금의 상태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라는 것 자체가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추상적 개념들을 언어라는, 특히 글이라는 틀에 담아 전달하는 것인데 이것이 컴퓨터 공학적 지식과 만나서 효율적으로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추상적 개념들을 컴퓨터에 구현하는 과정에 장점을 가지게 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들을 했다.
사색의 시간
나는 보통 점심을 일부러라도 혼자 먹는다. 핸드폰도 보지 않고 그냥 멍하니 먹는데 보통 위에 썼던 저런 생각들을 한다. 난 이것을 "디스크 조각 모음"이라고 표현한다. 떠다니는 추상의 파편들을 모아 서랍에 정리하는 행위이다. 일적인 것도, 위에 썼던 내 과거나 어떤 나를 구성하고 있는 혹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사색이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도 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난 정말 어렸을 적부터 썼던 글들이 아직도 나만 열람할 수 있는 형태로 있는데 이걸 읽어보면 진짜 내가 쓴 것 같지가 않다. 너무 잘 쓴 것도 있고 지금과 감정이나 감성이 너무 다른 것도 있다. 그래서 생각난 게 "아, 인간은 결국 세포가 교체되니까 이 옛날에 쓴 내가 쓴 것 같지 않은 글들은 실제로도 내가 쓴 게 아니다!"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놨었는데 갑자기 이것에 대해 궁금해서 논문을 찾아보니 세포가 교체되는 것은 '뇌세포를 제외한 전부'이며 뇌세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유지된다는 점이었다. 아, 결국 내가 쓴 거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강해진 긍정의 근육
옛날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안좋은 시기를 보내는 방법에 대한 글인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평범한 수준의 운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아무리 안좋은 일들이 생겨도 운의 총량이 평균회귀를 하게 돼있어서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기 때문에 멘탈을 잘 챙겨야된다는 글이었다. 살다보니 이 생각이 훨씬 더 맞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리 안좋은 일이 생겨도 힘들다가 아니라 그냥 "와 진짜 얼마나 잘되려고 이렇게 힘드냐"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할만해진다. 아니, 할만해지는 게 아니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왜냐면 돌아올 행운의 멀티플은 더 높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나의 능력을 더 준비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곱수로 작동하기 때문에 내가 더 준비가 잘 돼있는 만큼 마주치는 행운의 효과를 곱절로 만들 수 있다.
2025년은 내게 엄청난 변화의 해였다. 이에 대한 감상도 다음 글에 이어서 적어볼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