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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실패로부터 배우다

실패로부터 배우다 - 4. 이스코어드닷컴

규도자 (gyudoza) 2021. 7. 4. 06:14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생 대몰락의 시발점이 아니었다 싶다. 먼저 사전 설명을 하자면 난 이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한다. 구기종목이나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 롤 경기를 챙겨 보는 걸 좋아하게 됐다. 롤은 북미 때부터 근근히 하고 있지만 직접 하면 짜증나는 부분들이 그냥 경기만 보면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멋진 플레이를 선수들이 보여주니 그런 쾌감에 빠졌던 것 같다. 한국이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던 기간에는 국뽕도 느낄 수 있었고.

 그렇게 이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업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 업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보니 엄청난 속도로 팽창해가는 시장의 규모가 피부로 와닿았다. 그래서 이것과 관련해 뭔가 선점을 해놓으면 큰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돈이 없으니 큰 자본이 들어가는 일은 못하고, 내 직업이 프로그래머이니 관련 플랫폼 같은 걸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얼핏 축구 관련 기사에서 특정 선수가 점수 몇 점을 받았다. 누군 어떤 경기에서 몇 점을 받았다 하는 그런 기사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이스코어드 닷컴의 기획을 하고 만들었다. 본 화면은 아직도 이곳을 클릭해보면 들어가볼 수 있다. 혼자 만든 건 아니고 재직 당시에 같이 일했던 디자이너분 한 분과 퍼블리셔분 한 분, 이렇게 총 세명이서 작업을 했다. 물론 난 기획과 백엔드 개발자로서의 롤을 맡았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폭싹 망했다. 막상 제작했을 당시에는 "잘되면 플랫폼으로 키우고 안되면 포폴로 쓰고"라는 가벼운 마인드로 접근했지만 꽤나 공을 들였던 프로젝트가 대중의 관심을 단 1도 받지 못하고 망한 꼴을 보니 가슴이 매우 아팠다. 심지어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인력과 시간을 같이 갈아넣어 준 두 분께도 죄송하고 참 송구스러운 마음이었다. 아직도 이 짐은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보은할 기회가 온다면 언젠가는 꼭 보은할 생각이다.

 

그렇게 2020 스프링 한 시즌을 운영해봤는데 아무런 관심도 갖지 못해 그냥 폐기했다. 그래도 실패를 그냥 실패로 남겨놓을 순 없지, 실패요인을 분석해봤다.

 

 

 

1. 이스포츠시장이 아무리 커졌어도, 아직은 부족하다.

이스포츠시장이 커졌다 커졌다 하지만 아직도 기성 스포츠시장에 비해선 터무니 없이 작은 시장이다. 그 기성 스포츠시장에서 조차 마이너한 부류만 참고하는 경기 평점 같은 정보를 메인 컨텐츠로 내세운 커뮤니티였으니,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게 당연했다.

 

2. 평가를 남기려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평가를 참고하려는 사람들의 대다수이다.

내 인사이트가 많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난 예전부터 뭔가 평가나 리뷰, 그런 플랫폼을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항상 리뷰를 남기진 않고 참고하는 편이었다. 아마 대다수가 이럴 것이다. 국내 대형포털만 하더라도 리뷰를 참고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리뷰를 직접 정성스레 작성하는 사람들은 소수인데 아예 이용자 수 자체가 적은 플랫폼이라면...? 리뷰를 쓰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남겨져 있는 리뷰가 없이 그것을 참고하는 사람도 없는, 그냥 죽은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사이트는 이용자수라는 절대적인 파워로 밀어 붙여서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이용자수를 어떻게 모을까? 신생사이트는 홍보와 이벤트밖에 방법이 없다. 하지만 홍보와 이벤트에는 돈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 사이트를 완성시켰을 당시에 난 엄청난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었다. 그래서 손수 이런저런 커뮤니티에 홍보 글을 썼었는데 뭐 잠깐 들어오고 말고 하더라. 참, 노력이 무색해지는 경험이었다. 구글 애널리틱스로 분석했을 때 홍보 글을 정말 많이 썼을 땐 하루 몇백 명까지 들어왔었는데 단 한 명의 회원가입도 없었다.

 그래서 이건 규모의 논리로 밀어 붙인다기보다는 그냥 이 플랫폼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고 사람들에게도 딱히 필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플랫폼 운영을 포기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3. 너무 수고스럽다.

롤은 정규 시즌 중에는 3판 2선, 하루에 2경기, 그리고 총 10명이 참가하는 경기다. 그리고 심지어는 작년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하루 최대 3경기까지 있었다. 이것을 요약하자면 하루 최대 90개의 평가 주체가 생긴다는 것이다. 롤이라는 경기를 한 매치라도 봐본 사람은 알겠지만 세트별로 선수들이 사용하는 챔피언도 다르고, 아이템도 다르고, 선수조차 교체될 수 있다. 그러니까 평가의 최소단위는 세트별 선수가 돼야 하는데 이게 1세트에 10개라는 평가 주체가 생기니 내가 좋아하는 선수에게 점수를 몰빵시키고 싶다고 하더라도 게임이 끝날 때마다 각 세트에 들어가서 평점을 남겨야 한다.

 그러니까 2~3시간 하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그 영화의 평점을 남기는 영화 리뷰나 1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웹툰에 남기는 평가들보다 훨씬 그 밀도가 높다는 점이다. 그래도 나 혼자라도 플랫폼을 활성화시켜보기 위해 이런저런 아이디를 만들어 혼자서 댓글을 남기고 했었지만(위에 스샷에 보이는 댓글도 내가 다 단 거다) 어림도 없다. 하루에 쌓이는 데이터에 비해 내가 경기를 보고 직접 리뷰를 달 수 있는 양이 정말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봐도 플랫폼이 보면 볼수록 공허해보였고 이는 방문자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심어준다.

 

4. 비전문성

축구나 농구 매거진에서 발간하는 경기별 선수 평점은 전문 기자나 평가원들이 작성한다. 그러나 이 플랫폼은 유저들이 작성한다. 그래서 애초에 팬이 많은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의 평점이 높게 나오는 형태인 것이다. 물론 그정도 레벨까지 도달하지도 못했지만 애초에 설계 자체에 미스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플랫폼을 홍보하면 항상 나오는 말이 "디자인은 예쁜데..."였다. 디자인은 지금 내가 봐도 너무너무 예쁘다.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혼자 만들어보려고 했을 땐 진짜 개 구데기 같은 디자인이었는데 말이다. 친구한테 보여주니 초등학생 저학년이 컴퓨터실에서 ppt배워서 처음 만든 것 같은 디자인이라고 했다. 사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꽤 열이 받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진짜 구데기 같은 디자인이었어가지고. 하지만 이렇게 디자인을 멋지게 리뉴얼해주셨지만? 내용물이 별로였다. 그렇게 망했다.

 지금도 포폴로 쓰려고 도메인과 서버는 살려놨다. http://e-scored.com으로 접속할 수 있다. 들어가면 알 수 있다시피 뭐 아무것도 없다. 작년 스프링 시즌 이후로 업데이트 및 관리를 안했으니. 아무런 관리를 안해도 더럽혀지지도 않는 사이트라니, 정말 황량하기 그지없다.

 

 

이번의 실패로 배운 점? django, postgreSQL, nginx, gunicorn 등등의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긴 했는데 가장 큰 점은 파이썬으로 웹 플랫폼 서비스 하나를 온전히 런칭해내는 능력을 길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반사용자와의 공감능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단순히 "이스포츠 시장이 뜰 것 같으니 이런 평가사이트를 만들면 잘 되겠따!"라는 생각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여기에 매몰되는 인적자원과 기회비용에 비해서 너무나도 얕은 논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러이러한 플랫폼이 있을 때 내가 과연 쓸까? 하는 아주 객관화된 평가와 접근이 필요했는데 그냥 내가 이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것 때문에 감정적인 평가가 우선된 것 같다. 보다시피 결과는 처참했고 말이다.

 

 

다음에 알아볼 실패는 이번년도 초부터 불과 한 달 전까지 만들었던 퀀트 프로그램들이다. 수많은 전략을 시도했었지만 전부 실패했고 나는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니까 혹시 집에서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제부터 작성할 매매전략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바로 내가 내 돈을 갈아가며 실패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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