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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실패로부터 배우다

실패로부터 배우다 - 3. 디자인 스타트업

규도자 (gyudoza) 2021. 7. 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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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 업이 된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알음알음(친구의 친구)으로 디자인 스타트업 창립멤버로 활동하게 됐다. 내가 참여했을 당시에는 이미 상품과 사이트 등등은 완성된 상태였고 뭔가 일을 본격화하기 전에 인력이 모자라 날 믿을만 한 사람으로 추천한 것이다. 애초에 이 브랜드 자체도 친구 두 명으로 시작한 것이었고 거기에 내가 참여하게 되어 결국 동갑 친구 세 명이 함께 하게 된 스타트업이 된 것이다.

 이름은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아무튼 멸종위기 동물들을 주제로 하여 상품들을 만들어 팔고 그 수익금의 일부를 동물 보호단체에 기부하고 일부는 운영비로 쓰는... 그런 형태였다. 근데 운영비에 인건비는 들어가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 그렇다 난 이 스타트업의 일을 약 1년동안 맡으면서 단 1원도 받지 못했다. 물론 1년 내내 풀타임 근무를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학원과 병행하면서 글도 쓰고, 디자인을 하거나 디자인을 수정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PPT를 만들고 흔히 체계 없이 만들어진 스타트업의 초기멤버라면 함직한 일들을 전부 도맡아 했다. 심지어는 학원 과정이 끝난 이후엔 길지 않지만 풀타임 근무를 했던 기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관련 일을 하면서 단 1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동안은 모아둔 돈으로 생활했으며 미팅을 위해 정장과 구두도 사고, 가방도 사고 했지만 단 1의 리턴도 없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정말 다행인 건 식비는 쓰지 않았다. 운영비에 식비는 포함돼있었다.

 

 

지금 여기까지만 보면 무슨 사기당한 것마냥 표현을 해놨는데 사실 뭐 그런 건 아니고, 일이 잘 안풀린 케이스다. 그래도 난 돈 좋아하는데 애초에 돈을 벌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아이템이었다면 내가 참여했을까. 심지어는 나 말고 최초 창립했던 두 명은 소위 잘산다고 할 수 있는 부류였기 때문에 그걸 믿기도 했다. 실제로 친구 A는 본업으로는 소위 억대연봉을 받는 능력자였으며 주변 인맥도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난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했다.

 이번의 실패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스스로 늪처럼 빠져들어간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무실이 있기 전에 임시본부 + 물건창고로 쓰던 곳은 강남에서 제일 비싸다는 그 아파트였고, 그 친구가 실제로 거주하는 곳은 타워팰리스, 그리고 지방에 집 한 채가 더 있는데 해운대에 있는 그 아파트였다. 일단 내가 아는 재산만 이정도였다. 난 태어나서 이런 부류(재력가 집안)의 사람은 처음 만나봤기 때문에 뭔가 거기에 매료됐다고 해야하나. 이렇게 잘 사는 사람들은 무슨 비밀이 있을까 하고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컸던 것 같다.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돈을 벌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같이 일을 했고, 이것이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새로 잡은 사무실은 대충 이러한 전경을 가진 으리으리한 공유오피스였다. 난 군인출신이고 이러한 사무직과는 익숙하지가 않아 한국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게 익숙한 건 진흙과 풀, 바닷물밖에 없었으니. 심지어는 이런 파티다, 저런 파티다 하면서 이런사람 저런사람 만나보고, 비지니스 관련해서 얘기도 들어보고, 또 연예인도 보고 하니까 확실히 어딘가 취해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다.

 하지만 취기가 가시고 현실이 닥치니까 모든 게 치명상이었다. 거의 모든 업무를 맡고 있었던 만큼 인컴과 아웃컴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몇 개월 현상유지가 가능한데 현상유지라고 해봤자 내가 버는 돈은 없고 인력을 쏟아 붓는 것밖에 없는데 그동안 뭔가 다이나믹한 변화가 생기지 않으면 그야말로 ㅈ됐다는 상황이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린 ㅈ됐다.

 

 

예전에 누가 이런 말을 했었다. 스타트업이란 시내 한가운데에 좋은 사무실을 차리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출사표를 던지고 파티도 하고 술도 먹으면서 ㅈ됐다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너무나도 재미있고 좋은 표현이라 출처를 찾아보려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나온다. 유튜브의 스타트업 관련 연설에서 봤는지 아니면 책에서 봤는지... 아무튼 딱 이 문장에 걸맞는 게 내가 있던 스타트업이었다.

 으리으리한 사무실, 생전 해보지도 못한 파티, 동물을 위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이런 것들에 취해 있을 때 사실은 이것이 늪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것이다.

 

 

아무튼 사무실도 작은 곳으로 옮겨지고, 비지니스에 대해서 꽤나 관심을 보여하던 기업들도 하나 둘씩 줄어가면서 나도 도저히 여기에서는 미래를 꿈 꿀 수 없겠다 싶어서 그냥 관둔다하고 개발자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최초 창업자였던 두 친구는 지금은 완전 원수지간이 돼서 법적으로도 공방전을 치루고 있다. 정말... 지독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디자인 브랜드라는 게 사람들의 인식에 박히면서 장사가 되기 마련인데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애초에 몸집을 줄이고, 선기부 후생존보다는 선생존 후기부 형식으로 길고 가늘게 유지하는 방향을 탔으면 지금 쯤이면 꽤나 잘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A의 디자인 감각은 정말 뛰어났고 지금 봐도 당시 썼던 디자인 에셋들이 귀엽고 세련되기 때문이다. 만약 계속 그 스타트업을 유지한다고 했을 때 지금 쯤이면 햇수로 5년이 넘는 데다가 가면 갈수록 환경과 동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뭐, 이건 다 결과론적인 얘기고 당시로는 또 내가 나를 좀먹는 상황이 되는 것 같아 그만 뒀다. 아이템이고 나발이고 결국엔 생존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A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비지니스 본질보다는 다른 것에 뭔가 빠지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펀딩 프로젝트를 해서 돈이 수백정도 모였는데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그래도 얼마 벌었으니 우리끼리 얼마 나눠 갖고 뭐 기부하고 해야지" 이런 얘기를 했으면서 정작 나나 다른 한 친구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점. 뭔가 진짜 CEO가 아니라 CEO로 보이고 싶어하는 놀이를 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싸했었다. 물론 나가는 돈이 있어서 받아도 큰 돈은 못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외부사람한테는 그렇게 얘기하고 당장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에 관한 아무런 언질 없이 넘어갔다는 점이... 이 좋지 않은 예감의 시작이었다.

 한번은 디자인 용역을 쓸 때였는데 우리가 가진 캐릭터나 아이덴티티는 좋을 지언정 스타트업이고... 그냥 일 한 번 의뢰하고 빠이빠이 하면 되는데 아는 변호사에게 부탁해 캐릭터나 비지니스 모델 도용에 대한 계약서를 빼곡한 글씨로 A4용지 몇 장 되는 분량으로 만들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독소조항 만들었다면서 나한테 자랑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땐 그냥 멋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뭔가 자꾸 일의 본질보다는 다른 곳으로 빠지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물론 우리가 자리를 잡게 되고 이게 우리 스타트업의 표준계약서로 자리잡게 된다면 합리적인 행동이었겠지만 그냥 오늘내일 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런 데에 집착했다는 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때는 난 뭔가 사람을 부리고 싶어하는 CEO놀이에 빠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나는 1년 가까이 일하면서 돈 한 푼 못 받았는데 용역을 쓴다는 사실 자체에도 맥이 좀 빠졌었다.

 그래도 A는 여전히 나의 친한 친구이다.

 

 

 

그렇게 나는 침몰해가고 있는 배에서 뛰어내리고 취업전선에 합류했으며 그 스타트업은 얼마 가지 않아 망했다. 결과는 위에도 썼다시피 나를 제외한 두 죽마고우가 원수가 되고 수년간의 법정공방까지 가게 된 상황까지 가게 됐다.

 

 

 

 

이번의 실패로 배운 점?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프리미어 등 각종 편집, 디자인 툴에 익숙해졌다. 이건 굉장히 쓸만한 능력이다. 그리고 한 스타트업의 시작과 끝, 죽마고우였던 두 친구의 원수화까지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창업자가 다른 분야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고 집안에 돈이 얼마나 많고 주변에 얼마나 많은 인맥이 있든 사회는 냉정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잘 사는, 소위 성공했다고 부를 수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이해득실관계에서 철저하다는 점을 배웠다. 그래, 한 번은 호의로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증명해내지 못하면 끝인 것이다. 물론 이 "한 번의 호의"또한 엄청난 혜택이지만 그것조차 살릴 수 없는 비지니스라면 망하는 게 맞다.

 열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 비지니스를 위해선 비지니스 그 본질에 집중해야지 그것을 마주하는 게 스트레스받고 힘들다고 해서 자꾸 피해선 안 된다. 물론 그 고통을 마주한다고 해서 뭔가 얻는 게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하지만 피하면 그 얻을 수 있는 작은 확률조차 0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지니스는 생존이 곧 승리라는 것. 생존해서 사람들의 인식 사이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자리잡아야 한다. 비지니스가 생존해 있으면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잡을 확률 또한 늘어나기 때문에 정말 이 비지니스에 확신이 있고 열정이 있다면 폭발적인 형태로 달려가기 보단 무조건 길고 가늘게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 뒤에 세를 키우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이것이 맞다고 단언할 순 없다.

 

뭐 이런 점들을 배웠다. 솔직히 내가 자본주입을 한 건 아니고 이미 차려진 회사에 인력을 자본으로 해서 참여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 두 친구보다는 피해가 적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1년 가까이 일하고 돈을 벌지 못한 건 내게도 엄청난 피해였다. 하지만 그 두 친구보다는 피해가 적었다. 그래서... 나는 또 이번 사건으로 인해 멘탈이 갈리게 된다. 저번 웹툰 글작가로서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나도 아픈데 난 하소연하기 힘든,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미있던 건 한 크라우드펀딩회사의 정책을 바꿨던 점.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일정수의 후원인 숫자가 넘어가면 홈페이지 메인에 노출된다는 걸 깨닫고 가장 저렴한 상품을 만들어(예: 1000원 후원) 반복 가입 + 후원하는 오토프로그램을 만들어 메인화면에 우리의 프로젝트를 노출시키는 데에 성공했고 꽤나 많은 금액의 펀딩자금을 모았지만 아무래도 부정행위였던지라 그게 문제가 되어 프로젝트가 중단됐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플랫폼에 이것과 관련된 정책(허위 후원자를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자, 그렇다면 다음의 실패는? 바로 따끈따끈한 신작. 바로 작년(2020)에 실패한 이스코어드닷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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