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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2015)

규도자 (gyudoza) 2019. 5. 13. 12:28

전작인 사피엔스에서 유발하라리는 아프리카에 살던 별 볼일 없던 영장류가 지구를 지배한 경위에 있어서 법, 돈, 신, 국가, 종교 등의 집단신화를 공유하고 또 그를 이용해 결속하는 사피엔스라는 종의 특이한 기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런 허구를 믿는 힘이 점점 유물론적 사상과 증명이 하루가 멀다하고 발견되는 지금의 세태에서 과연 과거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호모 데우스의 주제이다.

 나는 예전부터 계속해서 이 블로그에서도, 옛날에 운영하던 책 관련 블로그에서도 "인간은 알고리즘이다"라는 말을 지속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는 나를 좀 더 잘 알고 잘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상을 갖고 있는 나조차도 호모 데우스에서 말하는 것들은 섬뜩하기 그지 없다. 아마 인본주의자들이나 종교주의자들은 이 책에서 보다 더 거부감과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호모 데우스, 그리스어로 신. 책에서는 사피엔스 다음으로 지구를 지배한 신 인류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호모 에렉투스에서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사피엔스까지 진행되는 인류의 계보는 우리가 글로써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던 시간보다도 더욱더 천천히 이뤄져왔다. 하지만 이 호모 데우스는 멀지 않은 미래에 현 인류에 의해 인공적으로 탄생하게 될 것이며 새롭고 발달된 종이 역사에 등장했을 때 항상 그랬듯이 사피엔스는 종말을 맞이하거나 가축화될 것이다. 호모 데우스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들은 이제 전능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종이기 때문이다.

 호모 데우스는 과학의 힘으로 수명을 제어하고, 영생을 얻고, 자신을 개량하고 가축을 개량하고 환경을 조종한다. 그밖에도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수많은 일들을 가능케 할 것이다. 나는 사피엔스라서 거기에까지는 의식이 닿지 못했다. 과학, 결국엔 과학이다. 넷플릭스가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알고, 아마존이 나보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더 잘 알고, 알고리즘이 나보다 내 이상형을 더 잘 안다. 여기에서 인본주의가 위협받는다.

 인간은 알고리즘이다. 데이터의 복합체일 뿐이다. 예쁜 꼬마 선충의 세포를 전부 코드로 구현했을 때 살아있는 생명체 처럼 움직이듯이 사람도 결국엔 수많은 세포와 뉴런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결국 23쌍의 염색체로 이뤄진 본체에 경험이 화학적, 전기적으로 축적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사람이 스스로 내면의 문제라고 믿었던 것들까지 결국엔 과학과 알고리즘의 힘으로 극복해내는 시대이다. 우울증과 집중장애를 화학적 작용(약)으로 극복해내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가치는 어디있는가? 사실 없다.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이라는 것 또한 사람들끼리 결속하여 만든 허구에 불과하다. 심지어 만들어진지 100년도 안 됐다. 세계 인권 선언문은 1948년에 발표됐다. 놀랍지 않은가. 사이보그로 영생을 살아가는 게 목표인 나조차도 이 책을 읽고 굉장히 섬뜩하고 무서운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나 그럴 것이 내가 주로 읽는 책들이 이런 것일 뿐더러 "사람의 마음은 없다"로 귀결되는 요즘의 과학계의 발표를 보고 있노라면 예전부터 들었던 생각, 그냥 사람은 행동양식이 좀 특이한 동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더욱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특히나 무서운 건 요즘 과학계에서 집착하고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과 이 책이 상충하면서였다. 그렇다. 요즘 과학계는 "의식"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

 의식에 집착하는 이유? 이곳이 인간존엄성의 마지막 요새이자 생명의 마지막 신비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의식을 만드는가. 우리의 자유의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들조차 사실은 유전자와 학습에 의해 정해진 값을 내뱉는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니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느끼고 있는 이 현재 의식, 이것의 뿌리는 무엇일까에 대해서 요즘 과학계가 집착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존엄성을 지키고 싶어서? 혹은 까발리고 싶어서? 내가 보기엔 아니다. 그냥 의식이라는 게 있어서 탐구하는 것이다. 과학은 그런 분야니까 말이다. 만약 의식의 정체조차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인류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그건 책을 직접 보고 느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사실 코드로 구현된 예쁜꼬마선충도 의식이 있지 않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올해 읽었던 책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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