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도자 개발 블로그
이기적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1976) 본문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는데 요즘에 초예측,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등등을 읽으면서 뭔가 다시끔 읽어보고픈 생각이 들어 다시 읽게 됐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땐 그냥 이기적으로 살라는 식의 자기계발서적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런 책이 아니어서 더 좋았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얘기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대답을 유발 하라리는 허구를 공유하여 결속할 수 있는 인간 특유의 특징을 지목했다. 예를 들어 은행은 돈을 빌려준 사람이 갚을 것이라는 "믿음이라는 허구"를 이용하여 가치를 생산하고 그 가치를 또 다른 사람에게 빌려줌으로써 현재 갖고 있는 재화의 가치보다 미래의 가치를 빌려와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종교도,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허구의 공유. 바로 이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오는 밈학과 궤를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계기이다.
문득 고등학교 때 들었던 철학수업이 생각났다. 바로 물건과 생명에 대한 차이였다. 지우개는 왜 존재하는가. 지우기 위해 존재한다. 키보드는 왜 존재하는가. 컴퓨터에 글씨를 입력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물건이다. 하지만 나무의 존재 이유, 비둘기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없다. 물건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생산된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은...? 그당시에는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정립됐다. 생물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 존재한다. 생명체란 우주라는 배경에서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나긴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유전자들의 수단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존재 이유이다.
뭐 이건 결국 이 책을 거시적 관점에서 해석했을 때의 이야기고, 책 자체에는 생물 하나하나를 예로 들어가며 행동양식에 대한 당위성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틀 안에서 설명한다. 책의 대부분은 다른 동물들에 대한 설명이지만 실상 사람에 대한 설명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한다.
사담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이 다 이런 종류이다. 감정은 습관이다, 최고의 공부, 이기적 유전자, 호모 데우스, 사피엔스, 털없는 원숭이, 종의 기원 등등. 그리고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과학에 대한 책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책들이 전부 다 어떤 공통분모를 하나 가지고 있다. 바로 "운명론"이다.
모든것은 결정하기 나름이라는 "결정론"과 반대로 모든 것은 정해져있다는 "운명론". 난 운명론자이다. 브라이언 그린의 천문학 서적에도 있다시피 우주는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이라는 개념으로 나뉘어져 있어 미래, 현재, 과거가 동시에 존재하는데 관찰자 입장에서 이를 바라보면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다 관찰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는 현재라는 개념이 퇴색되겠지만) 근데 과거를 보다가 미래를 본다고 해서 계속해서 미래가 바뀌느냐? 아니다. 이미 당신의 미래모습은 우주에 존재한다. 단지 당신이 현재 자각하고 있는 순간이 현재일 뿐이지.
이것과 분야도 완전 다르고 개념도 완전 다르지만 유전자에 대한 부분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의 2세는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다. 실제로 제임스 팰런 교수는 사이코패스에 자꾸 관심이 가서 나중에 알고보니 선조에 살인자들이 많았다. 서울대집안 자식들은 서울대에 갈 확률이 높다. 운동선수들끼리의 자녀는 큰 확률로 운동에서 흥미와 재능을 나타낸다.
그렇다 결국 사람의 운명은 미시적 관점에서는 유전자에 박혀 있고 거시적 관점에서는 우주라는 시공간에 박혀 있다. 물론 전부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난 이런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정은 습관이다'나 '최고의 공부'같은 책을 좋아한다. 이 책은 사람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기계로 인식하여 그 기계를 과학적으로, 효율적으로 잘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기술한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모든것이 정해져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치킨과 피자를 먹으면 행복을 느끼고 버스나 지하철을 놓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목표하는 바를 이루면 기쁘고 못이루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이런 것들은 모두 신체 화학작용의 산물이지만 여기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실제로 나라는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래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잘 살아가는 것 같다.
마지막에 가서 너무 두서없이 주저리 거렸지만 다시 읽어본 기회에 그간 있었던 생각들을 정리하게 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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